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나카 마사히로 (문단 편집) == 학창 시절 == [[초등학교]] 1학년 때 연식야구로 야구를 시작했으며 이때 포지션은 [[포수]]로 [[사카모토 하야토]]와 배터리를 짠 적이 있다고 한다. 또한 배팅 연습에서 좌측 방향으로 홈런을 연발하는 타격 실력을 보여줬다고. 심지어 4학년 때는 사카모토를 상대로 타격 경쟁에서 승리했다. 이때를 기점으로 사카모토는 스위치히터에서 우타자로 고정했다. [[중학교]]로 진학하면서 경식야구를 시작했고 이때부터 강한 어깨를 살려서 [[투수]]도 겸업하게 되었고 3학년 때엔 관서지방 지역팀에 선발되기도 했다. 관서지방을 떠나 [[홋카이도]]에 있는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[* 고시엔에 단골진출 하는 야구 명문으로, 엘리트야구를 하는 학교이다.]로 진학 이후엔 본격적으로 투수에만 전념하기 시작해 1학년 때부터 140km/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, 포크볼을 주무기로 주전 투수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2학년으로 등번호 11번을 달았던 2005년에 모교의 하계 [[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|고시엔]] 2연패에 공헌한다. 2006년에는 등번호 1번을 받아 3학년 때엔 [[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|고시엔]] 결승전에서 손수건 왕자 [[사이토 유키(1988)|사이토 유키]]가 버티고 있는 와세다 실업 고등학교와의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다나카는 '''3회부터 중간 계투로 등판해 15회까지 1실점'''[* 와세다는 2회전(1회전 부전승)부터 사이토 혼자서 버텼지만, 다나카는 한 학년 아래 투수 키쿠치가 있어 체력을 조금이나 세이브 할 수 있었다.]으로 막았지만 사이토 유키도 15이닝 1실점 완투를 하는 바람에 37년 만에 고시엔 결승 재경기가 열렸다. 다시 열린 결승전에선 1회부터 중간계투로 등판했지만 4:3으로 패하고 말았다[* 9회 이전 4-1로 리드했으나 도마코마이 고교가 투런홈런으로 따라붙으며 4-3이 되었다.]. 이때 마지막 타자인 다나카가 사이토한테 삼진을 당하면서 끝났다. 대회 종료 후엔 일본 대표로 미국 원정에 참가하기도 했고, 가을에 있는 제61회 [[국민체육대회]]에선 또 다시 [[사이토 유키(1988)|사이토 유키]]의 와세다 실업고와 결승에서 맞붙었지만 1:0으로 패배하고 만다. 이 대결은 2006년 일본 스포츠를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. 결과적으로 고교 통산 458탈삼진을 기록, 탈삼진수와 탈삼진율에서 종전 [[마쓰자카 다이스케]]를 웃돌았고 150km/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과 마구에 가까운 고속 슬라이더로 일찍이 주위에서 '''괴물'''이라는 호칭을 얻었다. 타자로서도 고교 통산 13홈런을 기록한 강타자이기도 했다. 한편 라이벌 위치였던 [[사이토 유키(1988)|사이토 유키]]가 와세다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더욱더 프로구단의 관심을 받았고 [[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]], [[오릭스 버팔로스]], [[요코하마 베이스타즈]], [[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]] 4개의 구단의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을 통해 라쿠텐이 교섭권을 획득, 고졸 선수로서는 이례적으로 계약금 1억엔+인센티브, 연봉 1,500만 엔(추정)으로 대학, 사회인 출신 입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프로에 입단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